2015. 2. 20. 20:06

부산은 넓다(유승훈)

독서 2015. 2. 20. 20:06



먼 사람들이 부산에 놀러오면 잘 지내냐는 말 한 마디 건넨다.

부산에 산다는 건 행운이다.


이따금 지인들에게 부산을 설명해달라는 청을 받는다.

일상 반복에 여행을 좋아하는 나도, 부산을 알아본 기억이 없다.

며칠동안 눈독 들이다 내용을 훑어보고 모셔왔다.


-


부산은 구(舊)도심과 현(現)도심의 구분이 명확하다.

왜관이 들어섰던 초량/수정동과 매립된 일대, 부산역 부근 그리고 동래와 부산진 근처가 이전 도심이고

서면, 남포동, 해운대 등은 최근 구성된 도심이다.

아이러니컬한 것은

서면과 남포동 사이의 구 도심은 현 도심의 사이라는 지리적 이점에도 불구하고 발전이 더디다.

이게 불만이었다. 이 곳에 살아서 그런 것 같다.

신항 재개발과 재건축의 바람이 불고 있지만 여전히 이곳의 시계는 늦다.


근처에서 살다 간 사람은 한결같이 이 곳을 뜨라고 한다.

'여기 역세권이야'

너스레 떨어보지만 여기서 얼마나 더 살 수 있을까 저울질 해본다.

이웃공동체가 낯선 나의 세대는 여기가 편하지 않다.

그 흔한 편의점도 없다. 엉켜있는 골목에도 빠진 이처럼 빈 집이 늘었다.

오래된 우리 공장 건물도 허물어졌으니 여기 있을 이유가 없다.


그런데 모르겠다.

사라진 것이 눈에 보이니, 사라질 것에 미련이 남는다.


부두 근처의 이 동네는 조선을 왕래하던 일본객들이 거처로 지내기 위해 급히 매립한 곳이다.

근처에 두오포왜관이 있었으니 그 필요가 느껴진다.

그러다 일제강점기에 부두로 오가는 마부들이 임시로 지은 집과 마굿간이, 해방되면서 졸지에 존치되었다.

얼마 안되 전쟁이 있었으니 이 곳에 남겨진 집과 마굿간에 실향민들이 자리잡았을 거란 추측이 가능하다.

사진을 좋아하는 난 여기가 좋다.

하물며 바깥 사람들은 어떠랴. 일부러 찾아 오는 사람이 많다.


책은 부산 전역을 소개하고 있지만 내가 사는 곳이라 그런지 더 관심있게 봤다.

글을 쓰면서 찾아보니, 이미 우리 동네에서 마을 활동가들이 자리 잡고있단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시간이 될 때 찾아가봐야겠다.


떠나고 싶다.

일상에 익숙해 하고 싶었던 걸 잊고 살았던지.

사진을 돌아보니 떠나야겠단 바람이 들었다.

떠나자.

우리 동네로.


-


언제라도 책장에 넣어두었다가

누군가 물어보면 대답해줘야겠다.

참 고마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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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갑질. 열정페이


착취와 관련한 사회구조적 모순에 분노하는 요즘.

바람직한 사회문화란 과연 무엇일까라는 고민이 들었고, 유일한 박사를 재조명한 TV 프로그램을 계기로 책을 골랐다.

내가 읽는 책은 꼭 사는 습관이 있는데 절판되어 찾아보니 중고장터에서는 가격이 이미 배가 되었다.

아쉬운 마음으로 도서관에서 2주를 기다려 빌렸다.


-


친구와 장래에 대해 이야기한 적 있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냐는 질문에 무어라고 답을 하기에,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도 물었다.

어려서부터 삼국지를 많이 읽었는데, 제갈량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답이었다.

부끄럽지만 나는 어려서 평전은 고사하고 그 흔한 위인전조차 한 권 읽지 않았다.

도통 그 친구의 답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서부턴 단 한 번도 경영자의 꿈을 꾸지 않았던 내가,

흡사 유일한 박사처럼 되기 위해서 CEO가 되어야겠다는 착각이 들기도 했다.


우리는 기업이 돈을 벌어들이기 위한 집단이라고 배운다.

그러나 유일한 박사에게 기업은 또 다른 대의를 위한 수단이었고,

세무조사를 받아도 떳떳할 수 있었던 것은 국민과 기업 그리고 국가 간의 역할에 대한 유일한 박사의 신념 때문이었다.

회사는 국가의 보호를 받으니 돈을 벌어들이는 기업은 세금을 착실히 내야하는 의무가 있다는 것.

소비자를 상대로 거짓된 상품을 팔면 안된다는 것.


강도높은 보복성 세무조사에도 문제점이 없어 되레 상을 받을만큼의 투명한 기업관리.

그리고 유한양행 설립 초기, 제시된 약물 성분의 10%를 추가하여 시판했다는 사실은 유명한 일화다.

혹여 유통과정 중에 성분이 날아갈 것을 대비한 철저한 계산이었던 셈이다.

의도치 않게 성분이 기준치보다 낮아지더라도, 이 또한 소비자를 기만한 것으로 판단했다.

당시 중독성 마약성분을 섞어 파는 일부 제약회사에 대응하여,

우리 회사도 그렇게 해야하지 않겠냐는 회사 임원의 제언에 당장 사표를 쓰라고 강권했다.

설립 당시 중역이었음에도 심리적 동요없이 사표를 이야기했다는 점에서 유일한 박사의 리더쉽에 대해서도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었다.


의인물용 용인무의

삼성 창업주인 이병철씨가 좋아했다는 중국 고전의 뜻은 유일한 박사에게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을 것 같다.

오히려 사업체를 친족 아닌 다른 사람에게 인계한 판단은 철저한 신념이 아니고서야 행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선공후사

나라를 빼앗기는 아픔과 전쟁의 시련 속에서 동생 세 명을 잃었던 슬픔.

만주의 가족들을 두고 먼 타지에서 어렵사리 공부했던 유일한 박사는 스스로가 강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인간된 마음으로 슬펐을 자신을 뒤로한 채, 철저히 자신의 신념을 실현하겠다는 고집이 인간된 마음으로 대단히 느껴졌다.


나는 그럴 수 있을까 되묻게 된다.

나에게는 어떤 신념이 있나.

이것 하나라면 다른 어떤 것을 원칙대로 하더라도 부끄럽지 않을, 나만의 신념은 무엇인가.

나에게 한 가지 확실한 점은,

각자가 가진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존중하고 존중받는 것. 내가 현재 가장 중요시 하는 신념이다.

나보다 나이가 많고 적고, 선배이고 후배이고, 선생님이고 학생이고는 역할일 뿐이고,

한 사람은 오롯이 그 사람으로 존재해야하는 법이다.


한 때 너무 싫어 내가 치를 떨던 사람이 있었다.

군대 후임이었는데, 나보다 나이는 많았다.

후임같지 않은 태도가 그냥 마음에 안 들었다.

나는 정말 합리적인 생각을 한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는데 마음이 한 쪽으로 기울어진 상태에선 잘 안됬다.

비단 나뿐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닌 것 같아서 계속 미워했다.


그런데 전역하고 나서 보니 내가 꼭 그 사람처럼 행동하고 있는 게 아닌가?

나는 나대로 최선의 선택을 하고 있을 뿐이다.

과거 그 이를 미워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그 후임에게 후임되기를 강요했던 게 아닌가.

네 색깔이 뚜렷한 사람이라는 걸 먼저 알았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던 것이다.

네가 가진 색깔이 군대와 맞냐 다르냐는 추후의 문제였다.

다른 네 가치를 보지 못하고 싫었던 내 어린 모습. 싫은 게 싫은 것이 아니라, 다른 게 싫은 내 모습.

결국 그 사람을 이해하지 못한 내 스스로에게 부끄러움과 왜 더 잘해주지 못했냐는 자책을 하고 말았다.


이후로 나도 선후배와 함께 일을 하면 선후배라는 이름을 벗어두고 생각한다.

분명 후배나 어린 사람인들 남 하기싫은 바쁜 일이 하고 싶을까.

누구든 하기 싫어 하는 일이라면 사람 대 사람으로서, 특히 그 자리에서 이야기 하지 못할 사람의 입장으로부터 회귀하려 한다.

그래서 내가 가능한 스스로 하려 한다.


그런 원칙으로 살아가다보니 선배라는 명분으로 스스로의 역할을 덜어내려고 하는 일에도 적극적으로 신념을 펼칠 수 있게 되었다.

그 사이에서 생기는 갈등에 스트레스가 없을 수는 없다.

허나 원칙대로, 신념대로 살지 않으며 억지로 해왔던 일들에 대한 죄책감보다는

모난 돌 정 맞을 거, 바깥 회사에서보다 학교 안에서 신나게 맞아보는 것도 좋을 거란 생각이 든다.

그 또한 배움 아니겠나.


그러고보니 이전 군대 후임의 모습을 그대로 따라가는 듯하다.

나이 많았던 그 후임이 나보다 많은 생각을 한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도의적으로 우리 문화에서 요구하는 나이 어린 사람에 대한 역할기대에 비교적 합당한 무언가가 있다면,

그것을 거절할 의향은 없다.

조직을 흔들면서 개인의 가치를 존엄하는 것도 분명 위험이 있을테니까.

하지만 아직까지도 조직 속에서 힘들어하는 개개인을 보며,

나 스스로부터 이 문제를 타개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지금 나에게 주된 신념이란

역할의 네가 아닌 사람 그 자체의 가치를 존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


책을 반납하기 전에 목차라도 찍어둘 걸 그랬다.


읽으면서 중고로라도 사볼까 여러 번 중고서점을 보았지만 되돌아왔다.

10년 전 350여쪽의 책이 만칠천 원이라는 점은 다소 놀랍다.

뭐 책에 값을 매기는 것이 어리석은 일이라는 거 아는 데도 놀랐다.


느끼며 생각한 점이 많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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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내려오다 습관처럼 책방에 들렀다.


요즘 사람이 너무나 그리웠다.

항상 있던 사람들로부터 떠나, 혼자 학교를 오가며 아무렇지 않을 수 있다면 거짓말이다.


나는 참 문학을 안 읽는다.

그래서 강의도 문학을 찾아 들었지만, 과거에 안 읽었던 관성은 어디가질 않았다.

조금이라도 균형을 찾고자,

2015년의 첫 책으로 시집을 택했다.


책장에 2권 꽂혀있던 이 책에 마음이 꽂혀서

지하철 안에서, 집에서 틈틈히 봤다.

어쩌다가 어제 교보문고를 들렀는데 매대에 한 가득 쌓아둔 모습을 보고, 뿌듯함을 느꼈다.

단지 먼저 읽은 책이 흥행했단 이유로.


사실 시집이 셀러 반열에 오르는 일은 쉽지 않다.

시집 한 권에 돈 만 원도 못하는, 배고픔을 이야기한 어떤 시인의 이야기처럼.


--


E.L 쉴러의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것은>이란 시가 좋아 휴대전화로 찍어두고 본다.

진정 사랑하는 사람이 떠난다면 슬퍼치 아니하고 그 순간을 사랑하라고.

사랑을 간직하는 것이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라는, 그 내용이 왜 이리도 가슴 시릴까.

서점 한 중간에서 뒤통수를 맞은 듯 멍하게, 아픔을 곧장 느끼듯 눈물이 핑 돌아 아주 혼났다.


묻고싶은 독자가 있을 법하다.

오히려 떠나는 사람을 향해 울부짖는 게 좋지 않을까하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도 궁금하다.


--


어쩌면 우리는 예전보다 더 많은 사람들 속에 살아 외로움을 느끼나보다.

사람 없이 못 사는 사람이, 어찌 사람을 멀리하며 지낼 수 있을까.

그 딜레마의 정수를 정확히 진단한 것 같다.

자기계발서가 주춤하는 현 추세에서 외로운 사람들을 보살펴주는 도구로써

시와 일러스트는 앞으로도 당분간 좋은 소재가 될듯하다.


우리가 색칠공부에 빠져있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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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110



  바른마음-나의 옳음과 그들의 옳음은 왜 다른가-(조너선 하이트)



책을 읽게 된 계기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이 한국에 상륙한다는 소식이 들리자 국내의 언론과 여론은 그에 대해 자극적인 평가만을 내었습니다.

심지어 '21세기 자본 바로읽기'가 '21세기 자본'보다도 먼저 출간되었으니, 그 긴장감은 소스라칠만 합니다.

저는 그 당시에 서점에서 부제인


'나의 옳음과 그들의 옳음은 왜 다른가?'


라는 근원적인 질문에 자극받아 구매했습니다.

똑같이 다들 잘 살자고 하는 이야기인건 맞는데, 왜 이렇게 다르냔 말입니다.




이 책, 추천합니다.



자신의 사상만 내세우고 나머지 사상은 멸절시키는 지성제국주의의 흔적을 이 책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스티븐 베이시)


위의 추천사 그대로 아주 겸손하지만 저자의 생각을 분명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도덕 매트릭스(저자는 이 말을 주로 사용하는데, 풀이하자면 도덕성을 판단하는 가치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다)란

자율성과 이성의 영역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고 설명합니다.


즉, 우리가 생각하는 도덕성이란 개인의 이성보다 직관(감정적인 부분)에 의존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에 대한 설명은 책 중간 쯔음 저자가 잘 이야기해 줍니다.


인문, 철학, 윤리, 인류학, 사회학, 심리학 등의 학문을 두루 넘나드는 통섭의 책이지만,

뒤로 갈수록 전문적이고 어렵다는 서평을 간혹 보았습니다.

이런 평가에 공감하지만, 결국 저자는 책 마무리에 자신의 생각을 길게 정리해놓았습니다.

독자분들께서는 어려우시겠지만 끈기있게 읽어주신다면 좋겠습니다.


'나'라는 사람에 초점을 맞추어도 좋고, '조직'이라는 틀에 초점을 맞추어도

이 책은 '왜 우리가 이렇게밖에 생각하지 못할까?'하는 질문에 어느 정도 혜안을 줄 수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 느낀점


나는 이 책이 쓸모 있는 도구가 되어, 한국인들이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조너선 하이트)



우선, 나부터가 굉장히 편협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느낍니다.

나는 진보적인 사람이라는 코끼리 위에 타고 앉아서, 단순히 나와 같은 생각을 하지 않은 사람들을 이해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두 눈이 있고, 두 귀가 있으니 그 사람들 말이 보이기도, 들리기도 할텐데

코끼리 위의 기수였던 나는, 왜 그리도 무지했을까요.

참 무서운 것은, 이렇게 느끼고 알면서도 앞으로도 수없이 뫼비우스의 고리처럼 반복될거라는 겁니다.


때로는 거기에 무기력함을 느끼며...

한편으로는 이 책이 '사람이기에 어쩔 수 없는 반복일 것'이라고 변명해주는 것 같기도 합니다.

어찌되었든, 내 스스로가 지나치게 자율성과 형평성의 도덕 매트릭스만 기준하였던 것 아니었나 생각하게 됩니다.

지나치게 개인의 가치에 대해 높이 평가했던 나머지,

조직이나 그룹, 집단의 가치에 대해서 다소 작게 생각했던 걸 느낍니다.


책에서 설명하듯, 우리는 호모 듀플렉스-이기적이면서 동시에 협력해야하는 인간-이고

또한 우리는 과거 거대한 집단을 이루어 다른 조직을 무너뜨린 구성원의 후예입니다.

과거에는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서 어떻게든 협동했어야 했는데, 

서구식의 민주적인 교육을 받고 산업화된 도시에서 사는 부유한 우리들이 점점 '우리' 아닌 '나' 주의로 치달아가는 지금을

경계해야하진 않을까...하는 생각도 합니다.


내가 사람을 볼 때도

이미 싫어진 마음의 코끼리를 타고 그 사람을 본 건 아닌지 반성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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